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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0. 1. 1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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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 계림(꾸이린/Guilin)
계림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도시인 동시에 역사도시이다. 광서성(廣西省) 동북부에 위치해 있고, 아열대 기후에 속해서 기온이 온화하며 연평균 기온은 19℃ 정도이고 인구는 약 50만 명이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이곳이 옛부터 계수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계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3억년 전에 원래 바다였다가 지각 운동으로 인해 바다에 쌓여 있던 석회암이 육지 위로 상승한 형태다. 이후에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친 후에 비로소 지금과 같은 지리 형세가 이루어졌다. 연평균 기온은 18.8℃이고 아열대 기후로 4계절 내내 따뜻하여 생활하기에 적당하다. 강이 발달하여 오래 전부터 하천교통의 요충지였고, 오늘날에는 상계(湘桂)철도가 개통되어 전통적인 상업 외에 면방직을 중심으로 한 화학·정비·농기구·제사·제지공업이 활발히 발달하고 있다.

시가지에서도 봉우리를 볼 수 있으며. 지리적 배경이 이강과 그 주위의 전원 풍경과 잘 어우러져 "桂林山水甲天下(계림산수갑천하 : 계림의 산수가 천하 제일이다.)"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구시가는 당(唐) 때 구축한 석회암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안(對岸)에는 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계림시는 소수 민족이 모여 사는 도시로 그 중에서도 장, 묘, 요족 등 28개의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수려한 산수와 농후한 민속 풍경이 서로 결합하여 원래의 자연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 가는 길
항공편 : 중국 남방항공에서 서울-계림간의 직항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데, 3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 음 식
광동 요리의 영향을 받아서 야생동물을 재료로 하는 것이 특징. 자라나 천산갑,야생고양이 등의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그 외에도 뱀장어,메기,비둘기 등도 사용하므로 잘못 음식을 시키면 먹지도 못하고 심한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야시장의 먹거리가 또한 일품인 곳이 계림이다. 지지고 볶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또다른 풍취를 느낄수 있다.
- 쇼 핑
계수나무꽃으로 빛은 술, 계화주와 아름다운 산수를 옮겨놓은 그림이 특산품이다.
 

칠성공원(七星公園 : 치싱꽁위엔)
시내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이강 동편에 위치해 있는 산, 수, 동굴, 바위 등의 절경이 어우러진 계림시의 유명한 유람지 및 최대의 종합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세 개의 산이 있는데, 낙타 모양을 한 낙타산(駱駝山)이 뒷편에, 월아산(月牙山)은 그 앞에, 보타산(普陀山)은 그 사이에 놓여 있다. 보타산에는 4개, 월아산에는 각각 4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칠성공원'이라는 이름은 7개의 봉우리가 하늘의 북두칠성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여러 개의 명소 중 칠성산이 공원의 중심을 차지하며, 소동강(小東江)과 영검강(靈劍江)이 공원 중심을 뚫고 지난다. 그리고 화교(花橋)는 공원 서남대문의 입구에 있으며, 계해비림(桂海碑林)은 공원 남문의 용은암(龍隱岩) 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공원의 면적이 너무 커서 각각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비교적 먼거리를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 화교(花橋)
계림의 특색있는 건축물 중의 하나다. 칠성공원의 입구 다리로, 소동강과 영검계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송대에 건축되어 약 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화교의 길이는 134.66m, 넓이는 6.9m이며, "화교도영(花橋倒影)"으로 가장 유명한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이 말은 다리 위의 네 개의 아치가 물에 비치는 모습이 마치 보름달과 같아 보인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특히 청록색의 유리기와가 그 고전적인 풍모를 대표한다.
☞ 보타산(普駝山)
공원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칠성공원의 중심 명소이다. 동굴과 정자가 많으며, 원풍동(元風洞), 호비정(護碑亭), 현무동(玄武洞) 등의 명소가 있다.
☞ 칠성암(七星岩)
칠성암동굴은 상, 중, 하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중간층은 제일 완전히 보존되어 있고 이미 개방되었다. 여정이 814미터, 제일 넓은 곳이 43미터고 제일 높은 곳은 27미터다. 하층의 동굴은 지하동굴로 중간층과의 거리가 10-15미터나 된다. 동굴 안에서 수백년간 형성된 종유, 석주 등이 기이한 장관을 연출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사자, 팬더곰, 용, 토끼 등과 비슷하여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월아산(月牙山)
월아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화교정(花橋亭) 안에 서서 보면 월아산의 가장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의 남쪽에 위치해 있고 용은동(龍隱洞), 용은암, 단계암(丹桂岩), 월아루(月牙樓), 반월정(伴月亭) 등의 명소가 있다.
☞ 계해비림(桂海碑林)
비석이 숲을 이루듯 하여 붙여진 이름의 계해비림은 용은동의 벽에 새겨진 비문을 가르킨다. 용은동은 전설에 의하면 용이 잠자던 곳이라 하는데, 후에 벽을 깨고 승천했다 한다.

첩채산(疊彩山 : 디에차이샨)
계림시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첩재산은 색깔있는 비단을 포개놓은 것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강, 독계봉과 인접하며 그 이름도 이러한 산의 형상을 본뜻 것이라 한다. 높이는 해발 73미터로 산에 올라 계림 시내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정상 부근에는 "풍동(風洞)"이라 불리는 호리병같이 생긴 동굴이 있는데, 동굴 벽에는 불상, 그림, 시등이 새겨져 있다. 이 외에도 첩채정, 월각, 인지당, 첩채누, 망강정 등 볼거리들이 많이 있으며, 정상까지는 등산객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계단을 이용해 약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또한 첩채산 내에는 나비 박물관이 있어 다양한 나비들을 만날 수 있으며, 나비와 관련된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있다.

이강(Li-river : 리지앙)유람
계림관광의 절정은 역시 계림에서 양삭(陽朔)까지 83km에 이르는 이강 유람이다. 이 구간은 산속 깊숙하게 돌아 흐르며 진귀한 유형을 하고 있는 봉우리들이 많이 있어 "현세 속의 선경(仙景)"이라고 불린다. 이강 주위의 선착장에는 많은 유람선들이 있어서 배를 타고 천천히 주위의 경관을 즐기는 것도 좋다. 또한 배 안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는데 선상에서 즐기는 식사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고기잡이 선수인 가마우지는 이강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황소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이강 유람 도중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가마우지는 대개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보다는 밤이 확률이 높다. 이강 주위에 보면 양 어깨에 가마우지를 메고 서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와서 돈을 달라고 하기 때문에 사전에 돈을 지불하고 찍어야 한다.

관암동굴(冠岩洞 : 관이엔동)
계림으로부터 약 10㎞의 거리, 남쪽 초평향에 있는 멋진 종유동굴이다. 관암의 길이는 12㎞이며 이미 리강에 근접한 3㎞는 개발이 되어 있다. 관암 동굴은 오랜 기간동안 폐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호가 잘 되어 있어 동굴 안에는 종유석, 석주, 석순 등이 모두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동굴의 입구가 높으며, 리강과 맞대고 있다. 관암은 총 4부분으로 나뉘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바깥쪽의 동굴이 그중 제일 크고 높으며 이강의 물이 흘러 이강과 연결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강유람을 하는 길에 관암에 들러 유람을 할 수 있다. 관암은 개발 초기부터 관광을 위해 계획적으로 설계되어서 자동 조명, 사운드 조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또한 관광객들의 편의와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모노레일, 유람선, 엘리베이터 등이 설비되어 있어 동굴 구경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복파산(伏波山 : 푸보샨)
시내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첩채산에선 남쪽으로 1㎞ 떨어져 있다. 독수봉(獨秀峰)과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육지와 맞닿아 있고, 동쪽에는 이강이 흐르고 있다. '복파산'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복파장군의 묘가 세워진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복파산에는 환주동(還珠洞), 천불암(千佛岩), 시검석(試劍石), 산호암(珊瑚岩), 청도각(聽濤閣), 대철종(大鐵鍾) 등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산밑에서부터 정상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진 돌계단이 있어서 30-1시간 정도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가면 계림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복파회랑(나선형 계단)은 복파산 제2 언덕위에 있는 "U"자형 복도 건축이다. 복도 앞에는 정자가 있는데, 정자 안에는 1000㎏은 거뜬히 나가는 "천인솥(千人鍋)"이 있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제3 언덕에 오를 수 있는데, 평지, 정원,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환주동은 복파암(伏波岩)이라고도 불리는데, 복파산 허리쯤에 위치해 있다. 환주동 앞에는 파도가 출렁이며, 동굴 안에는 기묘하게 생긴 시검석이 있는데, 이것은 당나라 때 상(像)을 만들었으며, 송나라 때 그 안에 조각을 세겨 넣었다고 전해진다. 종정(鐘亭)은 환주동 남문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꼭대기가 뾰족한 사각형의 정자이다. 정자 가운데에는 오래된 시계가 놓여져 있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고철 시계는 높이가 2.5m, 무게가 2524㎏이며, 청 강희8년(166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곳은 바람의 통로로 되어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풍어암(豊魚岩)
계림에서 남쪽으로 104㎞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차로는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이푸동굴)"이라고도 불린다. 1994년 5월에 대만과 이프 정부에서 투자해 개발이 시작되어 같은 해 9월에 정식으로 개방이 시작되었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아시아 제일의 동굴(亞洲第一洞)"이라고 칭해진다. 전체 길이가 7.1㎞인데, 동굴에 입장하게 되면 입구에서 2㎞는 걸어서 육로의 경치를 감상한 후에 3.3㎞는 어두운 강을 배를 타고 이동하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출구에 도착하기 약 30미터 지점에 동굴을 처음 발견한 곳이 있다. 비록 주위가 어둡고 배가 현대적이지는 못하지만, 강의 넓이는 2-12m, 수심은 대략 0.6m여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색깔의 조명으로 신비한 느낌을 갖게 하며, 양쪽 돌길 위에 모형 공룡을 설치해 두어서 관광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독수봉(獨秀峰)
계림에서 가장 오래된 명승지인 독수봉은 원래 시 중심에 있는 명대의 왕성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광서사범학원이 설립되면서 대학 캠퍼스안에 우뚝 솟아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입장할 수 있다. 독수봉은 이상하게도 평지가 갑자기 솟아 봉우리를 형성한 형상인데, 그 모습이 웅장하고 위대하여 '남천의 주'라 불린다. 봉우리의 서쪽 기슭에는 완만한 석도가 있는데, 길이 위쪽으로 향해 마치 하늘로 가는 계단같다. 306개의 석계단을 오르면 남천문에 다다르는데 산의 담동에는 고대 송나라 문인이 새긴 108건의 각이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5미터에 달해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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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산(象鼻山 : 샹비샨)
계림의 그림 엽서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곳으로, 마치 코끼리가 강물을 마시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비산은 또 상산(象山)이라고도 불리며, 해발 200m의 높이에 길이는 103m이고 폭 길이는 100m이다. 리강과 도화강이 회류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 면적이 1300㎢로 3억 6천년 전에 바다 밑에 있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자연적으로 생긴 산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이미 송·당 때부터 유명한 관광지였다. 주요볼거리로는 수월동, 상산암, 보진탑, 운봉사, 운내의 태평천국혁명유적진열관 등이 있고, 그렇지만 등산을 하기엔 위험해서 대부분은 공원에서 상비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것으로 관광을 끝낸다. 특히 수월동에서 물을 바라보면 마치 물 속에 달이 있는 것 같은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옛부터 이것을 노래한 시조가 있을 정도다. "물아래 밝은 달이 있어, 물위로 밝은 달이 떠있네, 물이 흘러도 달은 가지 않고, 달이 가도 물은 흐르지 않네." <<화수월동(和水月洞)>> 또, 1986년에는 상산공원(象山公園)이 만들어졌는데 공원 안에는 상비산을 비롯하여 상산수월(象山水月), 애정도(愛情島) 등이 있어서 계림시 관광 사업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노적암(蘆笛岩)
계림시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 중심에서는 5㎞ 떨어져 있다. 노적암 동굴은 깊이가 240m, 여행 길이가 500m이다. 동굴 내에는 석순, 석주, 석화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한 당나라때부터 역대 여행객들의 자취가 남겨져 있어서 현재 77개의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 1959년에 발견되고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는 식당, 찻집, 호수, 곡교(曲橋), 유람선 시설 등이 설비되어 있다. 노적암은 입구와 출구가 인접해 있다. 입구는 원래부터 있었던 천연동굴 입구이지만, 출구는 개발되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입구이다. 동굴은 70여만년 전에 지하수가 암석을 따라서 계속된 침식 작용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각각의 종유석에는 수정궁, 설남, 전원 풍경, 손님을 보내는 사자 등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붙여져 있고 컴컴한 동굴 안을 적 청, 황색의 빛들이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노적암의 특징은 동굴 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많아서, 석종, 석순, 석주 등의 발육이 왕성하여 유난히도 동굴 내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내부에는 다양한 색깔의 조명들이 동굴 내부를 비추고 있어서 마치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기이한 카르스트 지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으며, 길게 뻗은 기봉 속에 갖가지 신비로운 종유동들이 숨겨져 있다. 이곳은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해 계절에 상관없이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다. 1959년도에 한 농민에 의해 발견되어 개발된 후 지금까지 계림여행 중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여정이 되었다. 그 명성이야 아직 칠성암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칠성암보다 경관면에서 더 훌륭하다고 극찬한다.

용승온천(龍勝溫泉 : 롱셩원취엔)
묘(苗), 요(瑤), 장(壯)족 등의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용승각족자치현(龍勝各族自治縣)은 계림시내에서 서북쪽으로 134km 정도 떨어져 있다. 차로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용승현(龍勝縣) 내에 위치한 용승온천은 온천 주위가 여러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맑은 물이 산정상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데, 이 곳 사람들은 "신수(神水)"라고 부른다, 온천물 속에는 많은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수온은 평균 60℃이다. 이 곳에서 목욕을 하면 여행 중에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으며, 질병 치료에도 많은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천산공원(穿山公園, 촨샨공위엔)
천산공원(穿山公園)은 계림시의 동남쪽에 자립잡고 있는데, 계림시에서 산과 물이 어울어진 공원중의 하나로 전체 면적은 2평방킬로미터 정도다. 공원에는 천산(穿山)과 탑산(塔山)이 있으며, 이강의 지류인 소동강이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지나간다. 천산의 산기슭에는 천산암(穿山岩), 천암(穿岩), 월암(月岩) 등이 있고 산꼭대기에는 천산정자가 있다. 천산은 도시 중심에서 약 3.5키로 떨어져 있고 높이가 224미터, 총 면적이 31.76헥타아르에 이른다. 천산은 5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데, 생김샘이 수탉같이 생겨서 서동쪽이 머리, 남북쪽이 양날개, 중간 봉우리가 등, 서쪽 봉우리의 월암은 닭의 눈같다. 천산암(穿山岩)은 천산 산반(山半)에 있는 특이한 용암동굴인데, 총길이가 1,531미터, 넓이가 3~5미터, 면젹이 0.96핵타아르다. 3,400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7년에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동굴 안에는 아름답고 찬란하면서도 기묘한 종유석, 돌죽순, 돌기둥, 돌커텐, 돌방패 등이 있으며 보기 드문 돌나무가지도 있다. 이것들은 관람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연구의 가치가 또한 크다. 이강의 동안(東岸), 높이 194미터의 탑산(塔山)은 강과 더불어 마을과 논이 있는 곳에 있다. 원래 탑산은 100만년 전에만 해도 천산과 같이 붙어 있었지만, 지각변동으로 인해 지금처럼 분리가 되었다. 산꼭대기에는 8각 7층, 높이 13.3미터의 수불탑(壽佛塔)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병풍처럼 생겼고 그 밑으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다. 또 탑산은 자그마한 다리가 소동강에 가로 놓여 두개 산을 하나로 연결해 놓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천산공원을 유람할 때 산을 등반할 수도 있고 동굴을 구경할 수도 있으며 강에서 뱃놀이를 할 수도 있고 농촌의 전원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다. 특히 가을에는 탑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어 그 아름다움이 사람을 취하게 할 정도이다.

서가(西街)재래시장
서양인과 대만, 광동, 홍콩 등의 관광객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 시골의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양꼬치, 잡화, cd등 여러가지가 팔리고 있다.

월량산(月亮山, 위에량샨)
계림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양삭(陽朔)은 계림 못지 않은 천하의 절경으로 꼭 가봐야 하는 곳 중의 하나다. 월량산(月亮山)은 양삭의 유명한 관광명소 중의 하나로서 이 외에도 서동산, 벽련봉, 화산, 용두산, 월량산, 용음 옛나루터 등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들이다. 양삭은 계림시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져 있는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수나라때(590년) 이미 양삭현이 설치되었다. 양삭은 카르스트 지질이라는 특이한 조건으로 청산녹수의 경치가 특별히 많다. 양삭의 볼거리들은 대부분 석회암의 산들인데, 월량산(月亮山, 위에량샨) 역시 그들 중의 하나로, 산봉우리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구멍의 모습이 마치 달과 같아서 월량산이라는 이름이 되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구멍모습이 달라져 초승달에서 반달까지 다양하게 변한다. 봉우리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며, 정상에 오르면 구멍 너머로 주변의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겹쳐져 있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월량산 주변에는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양의 와호산(臥虎山), 구우령(九牛嶺) 등의 경관과 산고농업(三高農業) 시범구가 있고, 산 동쪽에는 높이 2m에 달하는 2,000m 길이의 동굴이 있는데, 각양각색의 기이한 종유석과 결정석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서산공원(The West Hill Park)
서산(西山) 공원은 구이린 시의 서족에 위치하고 있는 공원이다. 두개의 산과 박물관이 공원 안에 있다.

계림박물관
시내 서쪽의 서산(西山)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광서장족자치구 안에 사는 좡족(壯族)·야오족(瑤族)·먀오족(苗族), 수이족(水族), 투엉족 등의 소수민족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고, 명나라 때의 정강왕릉(정강왕릉)에서 출토된 자료와 명청대의 도자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양삭현(Yangshuo)
양삭현(陽朔縣 ;양숴)은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동북부에 있으며, 싱안(興安)­ 구이린(桂林) ­양숴 풍치지구를 형성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중국어 발음으로는 Yang-shuo이고, 보통 우리 나라에서는 양숴 혹은 양수오로 발음하면 된다. 구이린에서 60km 떨어져 있는 작을 마을로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중국 안에서 구이린의 경치에 겨룰만한 곳은 없고, 구이린 안에서 양숴에 버금갈 마을은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비길 데 없는 곳이다. 구이린보다 양숴가 더 볼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분히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여행객들이 여행 기념품을 사거나, 지역의 별미를 맛보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진대(秦代 : BC 221~206)에는 구이린 군(郡)에 속했으며, 한대(漢代)에는 시안현(始安縣)이 있던 곳이다. 삼국시대에 오(吳)나라는 양숴의 싱핑(興坪)에 상안현(尙安縣)을 설치했으며, 진대(晉代)에 희평현(熙平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대(隋代)에 양숴 현으로 다시 바뀐 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주요산물로는 수박·금귤·여름밀감·감·감귤 등이 있는데,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달콤하고 신선하여 상품(上品)으로 꼽힌다. 강을 끼고 있는 성벽 및 고목과 훌륭한 수목들은 명·청 양대의 유물이다. 기이한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고 풍경이 수려해 중국의 관광지 중에서도 보배로 꼽힌다. 경치가 좋은 주요명승지로는 비롄 봉(碧蓮峰), 수퉁 산(書童山), 자오톈 동굴(角田洞), 밍웨 동굴(明月洞), 톈자 강(田家河), 관옌(冠岩), 화산(畵山) 등 20여 곳이 넘는다.

가마우지새의 물고기잡이
가마우지를 이용한 리강 유역의 어업 형태는 구이린의 명물이다. 리강을 유람하게 되면 이런 진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행사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투어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가마우지는 잠수하여 입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바로 삼키지 않고 입속에 담아 두는 습성이 있는데, 리강 유역의 어업은 이런 자연의 특성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감아 물 속으로 들여보내면, 입 속에 물고기를 가득 넣고 나오는 가마우지의 입을 벌려 물고기를 꺼낸다. 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소가 대접을 받듯이 이곳에서는 가마우지새가 대접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황소보다 가마우지가 더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련봉
백련봉(碧蓮峰)은 양삭의 상징과 같은 봉우리로서 여행자가 양삭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봉우리다. 봉우리 자체의 아름다움은 그리 뛰어나지 않으나 정상에 오르면 양삭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강에 면한 동쪽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곳곳에는 정자와 누각이 배치되어 있다.

양삭공원
양삭현성의 서쪽에 인접하는 공원인데, 공원내에는 서랑산(西郞山), 내선동(來仙洞) 등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다. 서랑산 정상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벽련봉에서 내려다보는 것 못지 않게 아름답다.

흥평(Xingping)
흥평(興坪; 싱핑)은 리강의 아름다운 경치중에서도 '절정'인 곳으로 영화 제작진들과 미술학교 학생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이미 방영되었던 MBC 미니시리즈 "여명의 눈동자"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싱핑의 선착장은 야채, 물고기 시장이 열려 리강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양숴에서 버스로 한시간 정도 소요되며, 유람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배를 타고 돌아오거나 배를 타고 가서 자전거로 돌아오는 여행객들이 많다. 자전거로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자전거에 서툰 사람은 섣불리 시도하지 말것!(엉덩이에 심한 통증이 올 수도 있음^^;)

소주

카테고리 없음 2009. 8. 4. 15:11

소주

≪ 소주(蘇州 : 수조우 : Suchow)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습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천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전체 면적은 8,488㎢인데, 그 중 평원이 4,654㎢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571만명이며, 그 중 시내 거주 인구는 105만 명이다. 소주는 중국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로서, 기원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칭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 더욱더 번성하여, 비단의 생산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이때에 소주에 세워진 탑들이 많아서 지금도 송대의 탑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도 이때부터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성이 덜하지 않았고,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을 활성화시켜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그 명목을 계속 유지해 왔다. 또한,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소주의 정원도 유명해져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소주의 정원은 정교함이 특징으로 중국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송대부터 이어진 정원은 200가구에 이르렀고, 지금은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 중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이 가장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 가는 길
항공기 직항노선이 없으므로 중국 국내선이나 열차 버스, 자동차를 이용할수 있다.
- 쇼 핑
비단이 유명한 중국에서도 소주산 비단은 최상품이다. 특히 비단으로 만든 자수, 부채, 우산, 스카프, 블라우스등이 특산품으로 쇼핑하기에 적당하다.
- 음 식
운하가 접해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수산물 요리가 유명.
 

북사탑(北寺塔 : 베이쓰타)
소주 열차역에서 시내 번화가인 관전가로 가는 길에 버스에서 커다란 탑을 볼 수 있다. 탑이 있는 북사는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그 역사가 1700년에 이른다. 북사탑은 양(梁)대에 처음 건축되었고, 이후 화재에 의해 손실된 것을 남송대에 중건한 것이다. 북사탑은 8면 9층으로 높이가 76미터에 달한다. 장대하고 웅대한 목조누각식의 불교탑인 이곳은 강남에서 제일의 탑으로 여겨진다. 탑의 동쪽에는 명대에 중건된 남목관음전(楠木觀音殿)이 있는데, 이는 소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명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탑내에는 나무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소주 시내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한산사(寒山寺 : 한샨쓰)
남조 양(梁) 천감(天監) 연간에 지어진 사원이다. 원래 명칭은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으나 당대 고승인 한산자(寒山子)가 이 곳에서 머문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한산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웅전은 높이가 12.5m이며, 뒷 편에는 유명한 종이 있는데, 높이가 2m이고 직경이 1.4m이다. 당대의 청동 유두종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인이 광서(光緖) 32년에 바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일부 파괴되어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인 1911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한산사는 당나라의 시인 장계(張繼)의 《楓橋夜泊》이라는 시로도 유명하다. 장계는 노를 저어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유원(留園)
시내에서 4km 떨어진, 소주 서북 유원거리에 위치해 있는 정원으로 명대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소주 4대 정원중의 하나이다. 졸정원과 비슷한 시기인 1525년에 조성되었는데, 원래는 명대 한 관리의 사원(私園)으로 '동원(東園)'이라 불리다가 전쟁중에서도 손실없이 정원이 남겨지자 그 의미로 남을 유(留)자를 써서 유원이라 개명되었다. 이후 1953년 정부에 의해 다시 손봐지고, 이어 1961년에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유원의 총 면적은 3핵타아르로 동, 서, 중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산수, 회랑, 자연경관, 전원풍경이라는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데, 그 중 서원은 주로 토산으로 되어 있고 산위에 단풍나무가 있으며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회랑이 약 700m 에 걸쳐 있다. 또 소주 원림 건축특색의 하나인 화창(花窓)이 유원내의 회랑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창문은 일종의 장식품일 뿐 아니라, 창문에 비치는 정원의 풍경들을 걸을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그림으로 연출하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동원에 있는 관운봉(冠云峰)은 한덩어리의 태호석(太湖石)으로 높이가 6.5m, 무게가 약 5톤 정도인 소주 원림중에서 가장 큰 호석이다. 이 관운봉은 송대에 한 석농이 소주에서 약 40km 떨어진 태호변에서 크고 작은 돌조각을 모아 조각한 후 호수의 충적작용을 이용해 몇년간 완정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 더 놀랍다.

호구(虎丘 : 후치우)
소주의 북서쪽 교외에 위치. 산 높이 26m. 경치가 아름답고 명소가 많다. 그중 959년에 축조된 호구탑은 소주 옛성의 상징이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476년) 말기에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그의 아버지 합려(闔閭)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그를 매장한 지 3일째 되는 날에 하얀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 때문에 호구(虎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ha 정도의 광대한 면적 내에 여러 가지 명소가 자리하고 있는 호구의 첫째 볼거리는 호구산 정상의 운암사(雲岩寺) 탑이다. 높이 47.5m인 8각형 7층탑인데, 약 15도 기울어져 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 말하자면 중국판 피사탑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벽돌탑으로 961년에 완성된 것. 호구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은 오왕 합려(闔閭)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는 돌로, 실제로 가운데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곳에서 좀더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돌이 있는데, 이곳이 1,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千人石)이다. 그외에도 소동파가 즐겼다는 샘물인 제삼천(第三泉) 이나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 개의 검이 묻혔다고 하는 검지(劍池) 등이 있다. 검지에서는 진시황이나 손권(孫權)도 명검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지만 단 1개의 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자림(獅子林:스쯔린)
원(元)말기 1342년에 조성된 대표적 정원으로 당시의 천여단사와 그의 제자가 그들의 선생인 중봉단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원이다. 원래 중봉선생이 절강 천목산 사자암에 살았고, 원내에 사자모양을 한 바위가 많아서 이름을 사자림이라 지었다. 정원의 전 면적이 약 1핵타아르로 영롱한 태호석으로 이루어진 석가산(石假山)이 그 중 가장 유명하다. 이 산은 정원의 반을 차지하는데, 정원의 구조를 보면 남동쪽이 산이고 북서쪽이 연못으로 되어 있다. 또 정원 둘레에는 회랑을 둘렀는데, 사면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위아래에 굴곡이 있고, 회랑벽에는 67개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송대 4대 서예가인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비, 제양(祭襄)이 쓴 것이다. 또 문매각, 과폭정, 와운실, 하화정 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조형이 서로 달라 서로 다른 정취를 풍긴다.

졸정원(拙政園 : 쭈오쩡위엔)
소주 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면적은 약 5만m2이며 그 가운데 3/5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졸정원은 원래 당나라의 시인 육귀몽의 집이었다가 원대에 대굉사로 바뀌었던 것을 명나라때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 때 개축한 것이다. 졸정원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반악이 쓴 글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영어로 졸정원을 'Humble Administrator's Garden(미천한 행정가의 정원)'이라고 번역 하기도 한다. 졸정원은 동.중.서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핵심은 중원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빽빽히 들어선 비파원 등이 건축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관광의 핵심은 역시 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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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원림
소주시 현존원림의 대부분은 주로 조용하고 우아한 자연미를 추구하는 중국 고대의 사택원림이다. 자그마한 정원내에 꽃ㆍ나무를 심고 못ㆍ가산을 만들고 정자와 누각을 지어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구축해 놓았다. 구조배치에서 제한된 공간에 변화무상한 경지를 교묘하게 조성해 놓음으로써 중국 조원예술의 민족풍격을 구현했다. 소주의 이름난 4대 원림인 졸정원ㆍ유원ㆍ망사원ㆍ사자림은 각각 독특한 풍격으로 국내외에 이름 났으며, 1997년에 유네스코(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지정 중국 관광지가 되었다.

망사원(網師園)
5,000㎡의 부지에 조성된 정원으로 쑤저우시에 있는 정원 중 가장 작다. 북송 말에 사정지(史正志)에 의해서 건축되었던 만권당(万卷堂)이 청대의 송종원(宋宗元)과 구원촌(瞿遠村)에 의해 확장 정비된 것이다. 이 정원도 졸정원과 마찬가지로 역시 동·중·서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동부는 주택구, 서부는 화원구, 중부는 망사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구이다. 그리고 동구에 있는 주택은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 관료의 저택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망사(網師)라는 말은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쑤저우박물관(蘇州博物館)
졸정원 서쪽에 있는 것으로, 쑤저우(蘇州) 주변의 출토품이나 문물을 볼 수 있다. 상(商), 주(周)나라 이래의 고대의 청동기나 도검, 서화 등이 진열되어 있다. 쑤저우다운 것은 견직물이나 자수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남송(南宋), 명(明), 청(淸) 시대의 궁정 연회때의 헌상품이기도 했던 작품도 볼 수 있다.

창랑정(滄浪亭)
쑤저우에는 4대 명원(名園)이 있다. 창랑정은 그 4대 명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면적은 약 1ha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구조에 대나무가 잘 어울려 있다. 취령롱(翠玲瓏), 화창(花窓), 청향관(淸香館), 명도당(明道堂)이나 500명의 석각이 있는 오백명람사(五百名覽祠) 등이 볼 만하다. 창랑이라는 이름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지수(滄浪之水)에서 따온 것이다.

광제교와 신민교
광제교(廣濟橋)와 신민교(新民橋)는 석로(石路) 근처의 운하를 지나는 다리들로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쑤저우의 운치 있는 풍치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하얀 벽과 검은 기와로 매치되는 가옥들이 다시 검은 운하의 물과 어우러지는 쑤저우시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꼽힌다. 작은 배가 지나다닐 때면 더욱 안정적인 구도를 보이는 이곳은 전형적인 쑤저우의 풍경으로 쳐서 관광객이면 누구나 들른 곳이다.

단향선창(檀香扇廠)
쑤저우의 전통 공예품 중의 하나인 부채의 대규모 제조 직판점이다. 공장에서 부채를 만드는 공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견학한 후에 상점에서 부채를 살 수 있다. 실용품에서부터 유명한 화가의 수묵화를 동원한 고급 부채까지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다.

보대교(寶帶橋)
쑤저우시 남쪽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를 따라서 걸쳐 있는 길이 317m의 아치형 석교이다. 전체 53개의 아치형 공교로 이어져 있어 중국 최장(最長)의 석교로 간주되고 있다. 주변의 운하는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고수했는데 화베이 지방의 만리장성과 같은 수준의 화중지방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보대교를 따라 걸으면서 보는 주위의 풍경은 강남지방의 잔잔한 풍경의 매력을 또하나 더해 주고 있다.

소주자수연구소(蘇州刺繡硏究所)
소주자수의 침법을 연구하는 한편 국가용 선물과 전시품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이다. 소주는 특히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양면자수로 유명한데, 이곳은 이러한 자수를 생산하는 곳으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가는 실로 한땀 한땀 작업하는 광경을 직접 견학할 수도 있다. 판매소에는 자수상품이 있는데, 양면이 같은 그림인 것과 양면의 그림이 다른 것, 한 면만으로 된 것 등 다양하다. 개인 관광은 여행사에 신청해야 한다.

이원(怡園)
쑤저우 명원 특유의 특색 있는 부분을 활용하여, 청대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원래는 청나라 때 관리의 개인정원이었다. 면적 0.6ha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조성이 볼 만한 곳이다. 쑤저우시의 가장 중앙의 번화가인 관전가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쇼핑하는 중간에라도 잠깐 들러보면 된다.

호랑이 언덕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또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를 위해 조성한 묘지로장례를 지낸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고 해서 호랑이언덕이라고 불렸다. 호랑이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현존하는 중국최고의 벽돌탑인 기운 탑은 송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 기울어진 탑이 호랑이의 꼬리가 되어 완벽한 호랑이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묘관(쉬멘마오꾸안)
도교사원으로 소주의 중심가에 위치. 삼청정은 현묘관의 중심건물로서 6면으로 된 30개의 푸른 돌기둥으로 건축됬다.

반문(판먼)
운하와 다리 그리고 옛 성벽과 성문이 잘 어우러진 중국의 유일한 수륙양용 성문. 주나라 경왕 6년(기원전 514년)에 최초 설립. 1986년에 재건축. 운하가 남쪽으로 흘러 들어와 아치형의 오문교 밑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지금도 다리 위로는 자전거들이 지나다니고, 다리 밑으로는 배들이 물자를 수송하고 있다. 반문 안으로는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고, 밖에서 운하와 다리 그리고 성벽 아래를 거닐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문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탑이 바로 서광탑으로, 반문, 오문교와서광탑을 합쳐 '반문삼경'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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