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카테고리 없음 2009. 8. 4. 15:11

소주

≪ 소주(蘇州 : 수조우 : Suchow)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습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천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전체 면적은 8,488㎢인데, 그 중 평원이 4,654㎢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571만명이며, 그 중 시내 거주 인구는 105만 명이다. 소주는 중국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로서, 기원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칭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 더욱더 번성하여, 비단의 생산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이때에 소주에 세워진 탑들이 많아서 지금도 송대의 탑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도 이때부터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성이 덜하지 않았고,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을 활성화시켜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그 명목을 계속 유지해 왔다. 또한,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소주의 정원도 유명해져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소주의 정원은 정교함이 특징으로 중국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송대부터 이어진 정원은 200가구에 이르렀고, 지금은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 중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이 가장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 가는 길
항공기 직항노선이 없으므로 중국 국내선이나 열차 버스, 자동차를 이용할수 있다.
- 쇼 핑
비단이 유명한 중국에서도 소주산 비단은 최상품이다. 특히 비단으로 만든 자수, 부채, 우산, 스카프, 블라우스등이 특산품으로 쇼핑하기에 적당하다.
- 음 식
운하가 접해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수산물 요리가 유명.
 

북사탑(北寺塔 : 베이쓰타)
소주 열차역에서 시내 번화가인 관전가로 가는 길에 버스에서 커다란 탑을 볼 수 있다. 탑이 있는 북사는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그 역사가 1700년에 이른다. 북사탑은 양(梁)대에 처음 건축되었고, 이후 화재에 의해 손실된 것을 남송대에 중건한 것이다. 북사탑은 8면 9층으로 높이가 76미터에 달한다. 장대하고 웅대한 목조누각식의 불교탑인 이곳은 강남에서 제일의 탑으로 여겨진다. 탑의 동쪽에는 명대에 중건된 남목관음전(楠木觀音殿)이 있는데, 이는 소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명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탑내에는 나무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소주 시내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한산사(寒山寺 : 한샨쓰)
남조 양(梁) 천감(天監) 연간에 지어진 사원이다. 원래 명칭은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으나 당대 고승인 한산자(寒山子)가 이 곳에서 머문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한산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웅전은 높이가 12.5m이며, 뒷 편에는 유명한 종이 있는데, 높이가 2m이고 직경이 1.4m이다. 당대의 청동 유두종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인이 광서(光緖) 32년에 바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일부 파괴되어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인 1911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한산사는 당나라의 시인 장계(張繼)의 《楓橋夜泊》이라는 시로도 유명하다. 장계는 노를 저어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유원(留園)
시내에서 4km 떨어진, 소주 서북 유원거리에 위치해 있는 정원으로 명대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소주 4대 정원중의 하나이다. 졸정원과 비슷한 시기인 1525년에 조성되었는데, 원래는 명대 한 관리의 사원(私園)으로 '동원(東園)'이라 불리다가 전쟁중에서도 손실없이 정원이 남겨지자 그 의미로 남을 유(留)자를 써서 유원이라 개명되었다. 이후 1953년 정부에 의해 다시 손봐지고, 이어 1961년에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유원의 총 면적은 3핵타아르로 동, 서, 중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 산수, 회랑, 자연경관, 전원풍경이라는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데, 그 중 서원은 주로 토산으로 되어 있고 산위에 단풍나무가 있으며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회랑이 약 700m 에 걸쳐 있다. 또 소주 원림 건축특색의 하나인 화창(花窓)이 유원내의 회랑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창문은 일종의 장식품일 뿐 아니라, 창문에 비치는 정원의 풍경들을 걸을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그림으로 연출하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동원에 있는 관운봉(冠云峰)은 한덩어리의 태호석(太湖石)으로 높이가 6.5m, 무게가 약 5톤 정도인 소주 원림중에서 가장 큰 호석이다. 이 관운봉은 송대에 한 석농이 소주에서 약 40km 떨어진 태호변에서 크고 작은 돌조각을 모아 조각한 후 호수의 충적작용을 이용해 몇년간 완정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 더 놀랍다.

호구(虎丘 : 후치우)
소주의 북서쪽 교외에 위치. 산 높이 26m. 경치가 아름답고 명소가 많다. 그중 959년에 축조된 호구탑은 소주 옛성의 상징이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476년) 말기에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그의 아버지 합려(闔閭)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그를 매장한 지 3일째 되는 날에 하얀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 때문에 호구(虎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ha 정도의 광대한 면적 내에 여러 가지 명소가 자리하고 있는 호구의 첫째 볼거리는 호구산 정상의 운암사(雲岩寺) 탑이다. 높이 47.5m인 8각형 7층탑인데, 약 15도 기울어져 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 말하자면 중국판 피사탑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벽돌탑으로 961년에 완성된 것. 호구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은 오왕 합려(闔閭)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는 돌로, 실제로 가운데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곳에서 좀더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돌이 있는데, 이곳이 1,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千人石)이다. 그외에도 소동파가 즐겼다는 샘물인 제삼천(第三泉) 이나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 개의 검이 묻혔다고 하는 검지(劍池) 등이 있다. 검지에서는 진시황이나 손권(孫權)도 명검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지만 단 1개의 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자림(獅子林:스쯔린)
원(元)말기 1342년에 조성된 대표적 정원으로 당시의 천여단사와 그의 제자가 그들의 선생인 중봉단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원이다. 원래 중봉선생이 절강 천목산 사자암에 살았고, 원내에 사자모양을 한 바위가 많아서 이름을 사자림이라 지었다. 정원의 전 면적이 약 1핵타아르로 영롱한 태호석으로 이루어진 석가산(石假山)이 그 중 가장 유명하다. 이 산은 정원의 반을 차지하는데, 정원의 구조를 보면 남동쪽이 산이고 북서쪽이 연못으로 되어 있다. 또 정원 둘레에는 회랑을 둘렀는데, 사면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위아래에 굴곡이 있고, 회랑벽에는 67개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송대 4대 서예가인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비, 제양(祭襄)이 쓴 것이다. 또 문매각, 과폭정, 와운실, 하화정 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조형이 서로 달라 서로 다른 정취를 풍긴다.

졸정원(拙政園 : 쭈오쩡위엔)
소주 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면적은 약 5만m2이며 그 가운데 3/5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졸정원은 원래 당나라의 시인 육귀몽의 집이었다가 원대에 대굉사로 바뀌었던 것을 명나라때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 때 개축한 것이다. 졸정원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반악이 쓴 글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영어로 졸정원을 'Humble Administrator's Garden(미천한 행정가의 정원)'이라고 번역 하기도 한다. 졸정원은 동.중.서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핵심은 중원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빽빽히 들어선 비파원 등이 건축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관광의 핵심은 역시 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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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원림
소주시 현존원림의 대부분은 주로 조용하고 우아한 자연미를 추구하는 중국 고대의 사택원림이다. 자그마한 정원내에 꽃ㆍ나무를 심고 못ㆍ가산을 만들고 정자와 누각을 지어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구축해 놓았다. 구조배치에서 제한된 공간에 변화무상한 경지를 교묘하게 조성해 놓음으로써 중국 조원예술의 민족풍격을 구현했다. 소주의 이름난 4대 원림인 졸정원ㆍ유원ㆍ망사원ㆍ사자림은 각각 독특한 풍격으로 국내외에 이름 났으며, 1997년에 유네스코(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지정 중국 관광지가 되었다.

망사원(網師園)
5,000㎡의 부지에 조성된 정원으로 쑤저우시에 있는 정원 중 가장 작다. 북송 말에 사정지(史正志)에 의해서 건축되었던 만권당(万卷堂)이 청대의 송종원(宋宗元)과 구원촌(瞿遠村)에 의해 확장 정비된 것이다. 이 정원도 졸정원과 마찬가지로 역시 동·중·서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동부는 주택구, 서부는 화원구, 중부는 망사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구이다. 그리고 동구에 있는 주택은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 관료의 저택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망사(網師)라는 말은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쑤저우박물관(蘇州博物館)
졸정원 서쪽에 있는 것으로, 쑤저우(蘇州) 주변의 출토품이나 문물을 볼 수 있다. 상(商), 주(周)나라 이래의 고대의 청동기나 도검, 서화 등이 진열되어 있다. 쑤저우다운 것은 견직물이나 자수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남송(南宋), 명(明), 청(淸) 시대의 궁정 연회때의 헌상품이기도 했던 작품도 볼 수 있다.

창랑정(滄浪亭)
쑤저우에는 4대 명원(名園)이 있다. 창랑정은 그 4대 명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 면적은 약 1ha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배치와 구조에 대나무가 잘 어울려 있다. 취령롱(翠玲瓏), 화창(花窓), 청향관(淸香館), 명도당(明道堂)이나 500명의 석각이 있는 오백명람사(五百名覽祠) 등이 볼 만하다. 창랑이라는 이름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지수(滄浪之水)에서 따온 것이다.

광제교와 신민교
광제교(廣濟橋)와 신민교(新民橋)는 석로(石路) 근처의 운하를 지나는 다리들로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쑤저우의 운치 있는 풍치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하얀 벽과 검은 기와로 매치되는 가옥들이 다시 검은 운하의 물과 어우러지는 쑤저우시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꼽힌다. 작은 배가 지나다닐 때면 더욱 안정적인 구도를 보이는 이곳은 전형적인 쑤저우의 풍경으로 쳐서 관광객이면 누구나 들른 곳이다.

단향선창(檀香扇廠)
쑤저우의 전통 공예품 중의 하나인 부채의 대규모 제조 직판점이다. 공장에서 부채를 만드는 공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견학한 후에 상점에서 부채를 살 수 있다. 실용품에서부터 유명한 화가의 수묵화를 동원한 고급 부채까지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다.

보대교(寶帶橋)
쑤저우시 남쪽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를 따라서 걸쳐 있는 길이 317m의 아치형 석교이다. 전체 53개의 아치형 공교로 이어져 있어 중국 최장(最長)의 석교로 간주되고 있다. 주변의 운하는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고수했는데 화베이 지방의 만리장성과 같은 수준의 화중지방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보대교를 따라 걸으면서 보는 주위의 풍경은 강남지방의 잔잔한 풍경의 매력을 또하나 더해 주고 있다.

소주자수연구소(蘇州刺繡硏究所)
소주자수의 침법을 연구하는 한편 국가용 선물과 전시품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이다. 소주는 특히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양면자수로 유명한데, 이곳은 이러한 자수를 생산하는 곳으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가는 실로 한땀 한땀 작업하는 광경을 직접 견학할 수도 있다. 판매소에는 자수상품이 있는데, 양면이 같은 그림인 것과 양면의 그림이 다른 것, 한 면만으로 된 것 등 다양하다. 개인 관광은 여행사에 신청해야 한다.

이원(怡園)
쑤저우 명원 특유의 특색 있는 부분을 활용하여, 청대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원래는 청나라 때 관리의 개인정원이었다. 면적 0.6ha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조성이 볼 만한 곳이다. 쑤저우시의 가장 중앙의 번화가인 관전가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쇼핑하는 중간에라도 잠깐 들러보면 된다.

호랑이 언덕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또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를 위해 조성한 묘지로장례를 지낸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고 해서 호랑이언덕이라고 불렸다. 호랑이 언덕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현존하는 중국최고의 벽돌탑인 기운 탑은 송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 기울어진 탑이 호랑이의 꼬리가 되어 완벽한 호랑이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묘관(쉬멘마오꾸안)
도교사원으로 소주의 중심가에 위치. 삼청정은 현묘관의 중심건물로서 6면으로 된 30개의 푸른 돌기둥으로 건축됬다.

반문(판먼)
운하와 다리 그리고 옛 성벽과 성문이 잘 어우러진 중국의 유일한 수륙양용 성문. 주나라 경왕 6년(기원전 514년)에 최초 설립. 1986년에 재건축. 운하가 남쪽으로 흘러 들어와 아치형의 오문교 밑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지금도 다리 위로는 자전거들이 지나다니고, 다리 밑으로는 배들이 물자를 수송하고 있다. 반문 안으로는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고, 밖에서 운하와 다리 그리고 성벽 아래를 거닐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문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탑이 바로 서광탑으로, 반문, 오문교와서광탑을 합쳐 '반문삼경'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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