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해시(上海市)
면적은 6,341㎢, 인구는 약 1475만 명(1997)이다. 중국 제1의 대도시이며 행정적으로는 성(省)과 동격인 중앙정부 직할시(直轄市)이다. 시역은 시가지부의 10구(區), 교외부의 10현(縣)으로 나뉜다. 시가지는 양쯔강 어귀의 남안(南岸), 황푸강[黃浦江]이 양쯔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시가지 주변의 넓은 땅과 양쯔강 어귀의 하중도(河中島)인 충밍섬[崇明島]을 시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시가지를 흐르는 또 하나의 주요 하천인 우쑹강[吳淞江:蘇州河]이 황푸강에 합류하는 지점을 옛날에 후독[瀆]이라 불렀다. 상하이의 별칭 ‘후[]’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부근은 장난[江南] 삼각주 지대로 토지가 비옥하고, 위의 하천 외에 크고 작은 여러 수로가 시역에 종횡으로 뻗어 있다. 기후는 온난하여 연평균기온 15~16℃를 보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100~1,200mm이다. 상하이는 송말(宋末)의 1267년에 이미 무역항이 되어, 무역감독관청으로서의 시박사(市舶司)의 분소(分所)가 설치되었다. 1842년에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구미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開港場)이 되자, 상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여 중국 제1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상하이의 실권은 외국인의 해관세무사(海關稅務士)가 장악하고,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인정되는 외국인의 조계(租界)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여 1949년까지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격렬한 대결이 되풀이되기도 하였다. 한편 상하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곳에서 1919년 4월 17일에 조직되어 1932년 5월에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杭州]로 옮기기까지 활약했던 곳이다. 또 1932년 4월 29일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이곳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등을 폭사 부상케 한 곳으로, 윤봉길 의사 의거 유적지와 임시정부 청사가 보존되어 있다. 상하이는 중국 굴지의 공업도시로, 방직 기계 조선 전기기기 화학 비료 인쇄 등의 공업이 다양하게 영위되고, 또 기술적으로도 전국을 리드하고 있다. 본래 경공업, 특히 방직공업의 비중이 대단히 높았으나, 근래 중화학공업이 크게 신장하고 있다. 시가지 교외의 각 현(縣)에서는 쌀 외에 채소 목화 과일 재배 및 양돈 양금(養禽) 담수어양식 등이 활발하다. 1968년 10월 난징[南京]의 창장대교[長江大橋] 완성에 의해 베이징[北京]에 직결되는 징후[京] 철도가 열리고, 또 후항철도[杭鐵道:상하이~항저우] 외에 많은 도로가 집중되어 있다. 상하이 국제공항은 국내 각지와 국내선을 통하는 외에 국제항로가 열려 있고, 황푸강의 상하이항은 근래 내외 선박의 출입이 급증하여 수만톤급 외항선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중국 최대의 무역항이자 세계적인 무역항이다.

상하이는 중국의 주요 학술 문화 중심지의 하나이기도 하여 푸단[復旦]대학 통지[同濟]대학 화둥[華東]사범대학 등 여러 대학과 다수의 연구기관 및 50만 권의 장서가 있는 상하이도서관과 상하이박물관 등이 있다. 인민공원 중산[中山]공원 훙커우공원 푸싱[復興] 공원 등이 있고, 명소 고적으로는 징안사[靜安寺] 룽화사[龍華寺] 및 루쉰[魯迅]의 묘(墓:훙커우공원), 서광계(徐光啓)의 묘 등이 있다. 상해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계속해서 배워왔던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국내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상하이의 빌딩은 모두 높고 기발한 디자인이며 젊은이들에게는 개성적인 패션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이곳이 정말로 중국인가 할 정도이다. 중국 최대의 공업 도시이자 항구 도시이며, 북경, 천진과 함께 중구의 3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이다. 경제, 무역, 기술, 문화의 중심 도시이며, 600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총면적은 6,184㎢이며, 12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640만 명은 도시의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다. 원래 상해는 양자강 하구의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의해 개항되면서부터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미국, 일본 등 열강에 의해 계속 조차 지역으로 승계되었던 상해는 오늘날 한 나라의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발달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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